지난 2020년 10월 초부터 얼리 액세스를 통해 제공되던 기대작이 있다. 바로 지난 3일 예정된 것보다 이르게 정식발매를 진행한 라리안 스튜디오의 '발더스 게이트3'이다. 현재 정식발매 기준으로 공식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지만 유저들이 모여 보다 편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활약하고 있다.
D&D 시리즈의 포가튼 렐름 세계관을 기반으로 게임을 짜낸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CRPG라고 불리는 RPG의 오랜 인기작이다. 특히 서양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그간 모바일 버전, 리메이크한 확장팩 등을 출시하며 고전 CRPG의 명맥을 이어오기도 했지만 이번에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3은 정식 시리즈로는 약 19년 만에 출시되는 신작이다. 개발사도 원작을 개발한 바이오웨어나 인핸스드 에디션을 개발한 빔독이 아닌 라리안 스튜디오로 정해졌다.
전작과 차이라면 우선 실시간 기반으로 정지 기능을 이용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턴 기반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점이 있다. 디비니티 시리즈로 유명한 라리안 스튜디오인만큼 게임의 시스템도 디비니티 시리즈의 것과 비슷한 감성이 생겨 기존에 해당 시리즈를 플레이해봤다면 좀 더 유연하게 게임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 때문에 호평 사이에도 발더스 게이트3이 아니라 발더스 게이트의 스킨을 뒤집어 쓴 디비니티가 아닌가 하는 반응들이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늘은 명작의 반열에 드는 CRPG 시리즈지만 아무래도 19년 만에 발매되는 신작인데다 서구 쪽에서 더 인기가 많았던 발더스 게이트3의 열광적인 반응에 관해 게임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 발더스 게이트3의 개발까지
발더스 게이트3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라리안 스튜디오만 한 것은 아니다. 인터플레이의 블랙 아일 스튜디오, 아타리에게 개발 제안을 받았던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인핸스드 에디션을 개발했던 빔독 등이 개발을 시도했으나 인터플레이는 PC판 발더스 게이트의 권리를 포기해 개발이 취소됐고 아타리 유럽은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면서 프로젝트가 무산되었으며 빔독은 3편 대신 인핸스드 에디션의 확장팩 시즈 오브 드래곤스피어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디비니티:오리지널 신 이전까지는 게임 마감이나 출시 관련 이슈도 많이 겪었고, 크라우드 펀딩의 경우도 타 CRPG들에 비해 훨씬 적은 액수가 모이는 등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라리안 스튜디오는 상상 이상으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개발사다. 투자나 퍼블리싱 관련으로 몇 번의 좌절을 한 끝에 라리안 스튜디오는 결국 자신들의 방향성을 약간 수정하게 된다. 다만 출시하는 게임들의 지향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체엔진을 사용하고 퍼블리싱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디비니티:오리지널 신 시리즈를 통해 좋은 호응도 얻어 성공 궤도에 올라탔던 라리안 스튜디오의 스벤 빈케 CEO는 자신이 영감을 받았던 울티마 시리즈를 떠올리며 D&D 룰을 기반으로 개발된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의 신작 개발을 따내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지금 플레이할 수 있는 발더스 게이트3의 개발이 시작됐다. 이후 라리안 스튜디오는 E3 2019에서 발더스 게이트3의 개발 소식을 전하고, 2020년에는 첫 시연을 하면서 얼리 액세스를 시작해 차근차근 발더스 게이트3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 기존 팬과 신규 팬, 납득할만한 절충안
이런 비화를 거쳐 결국 성공적으로 정식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3은 아무래도 20년 가까이 지난 전작들을 잇는 작품인만큼 게이머에게 전작의 내용을 알아야 하거나 플레이해봐야 하나?라는 의문과 일종의 부담감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 한편 기존 팬으로서는 얼리 액세스 등을 통해 전작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는데, 막상 실제 게임이 출시되고 나니 라리안 스튜디오가 기존 팬과 신규 팬 둘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처음 게임을 플레이하면 직접적으로 전작과의 연계가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크지 않은데, 전작들로부터 약 100년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전의 사건들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신규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식으로 넘어가면서 발더스 게이트3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관련된 이야기 중 하나로 가볍게 알고 넘어갈 수 있으며 전작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 발더스 게이트3의 메인 및 서브퀘스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기존 팬으로서는 전작과 직접적인 연결을 주는 요소가 적다는 부분이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면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연결이 없는 식은 아니다. 직접적인 언급이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피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작의 사건이 언급되는 것으로 기존 시리즈를 알고 있는 팬이라면 더 흥미로울만한 부분들을 남겨뒀으며 트레일러에서도 볼 수 있듯 전작의 등장인물인 민스크와 같은 직접적인 전작과의 연결고리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 자유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상호작용
TRPG를 직접 해봤거나 실황을 보면 꽤 기상천외하고 우스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보기 힘들지만 모여서 이야기와 주사위만으로 게임을 즐기는 TRPG는 그야말로 룰에서 아주 벗어나지만 않으면 기상천외한 자유도를 보장하는 게임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TRPG 스타일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CRPG 장르 신작으로서, 발더스 게이트3의 경우 RPG란 장르 내에서 보여줄 수 있을만한 풍부한 자유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상호작용 요소가 상당히 충실한 게임이라는 점이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첫 시연에서 장화를 던져 적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준 부분부터, 실제 출시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이런 것을 플레이어들끼리 공유하는 점 또한 발더스 게이트3의 재미다. 우연히 마주친 A를 구슬려서 이용하고 배신해 이득을 취하는 보편적인 방식부터 특정 장소를 지나가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무기를 활용하거나 하나하나 상자를 쌓아서 길을 만들어버리는 등 정말 이런 게 되나?라고 상상하는 방식의 상당수를 구현했다.
CRPG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택지 관련 주사위 굴림, 스킬 체크도 실패했을 때 페널티만 얻게 되는 기존의 불쾌함을 많이 덜어내고 이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의 길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호평할만하다. 이런 부분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와 경악할만한 사건들을 마주할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자신만의 이야기가 큰 틀 안에서 구성된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 게임 하나의 충분한 포만감
게임 하나가 줄 수 있는 포만감이 풍부하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사실 다른 게임들에서도 많이 충족시켜주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작금의 AAA게임들이 매출을 내기 위해 점점 소액결제 요소를 넣거나, DLC를 위한 부분을 일부러 멀쩡한 본편을 조각낸다는 밈도 있을 정도로 규모 있는 게임 하나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도가 줄어가는 편이었다. 반면 발더스 게이트3은 취향이 갈릴지언정 본편 하나만으로도 속된 말로 '뽕을 뽑을 수 있는' 게임에 속한다.
이런 부분에 기여한 것은 앞서 언급된 상호작용에 기반한 자유도도 한몫을 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전회차 플레이와 다른 세부 전개가 펼쳐지기도 하고, 선택지 성향을 다르게 고르는 것으로 게임의 결말이나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니 말이다. 더불어 멀티플레이를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면 더욱 즐겁고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바라볼 수 있다. 혼자서, 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면서 온전하게 게임 하나를 즐긴 후 남는 포만감이 남다르다.
최근 발더스 게이트3이 업계 표준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게임업계 관련자에게 나온 바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우여곡절을 겪은 개발사기는 해도 현 시점에서는 수백 명 단위의 인력을 가진 개발사이며 자체엔진과 퍼블리싱을 운영할 수 있는 게임사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주도적으로 게임을 개발해 원하는 방향성을 추구할 수 있는 게임사가 아주 많지는 않을 것이다. 조건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있으니 모든 게임사가 발더스 게이트3처럼 게임을 선보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게임 산업도 결국 수익을 창출해내기 위한 산업이니 수익을 추구하는 것도 나름의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부정하고 지향하지 말아야 하는 것 또한 잘못된 시각이라 생각한다. 발더스 게이트3은 꽤 잊혀져왔던 AAA급 게임에서의 만족감을 되살리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됐다. 온전한 게임 하나를 조각내서 DLC 등의 추가 컨텐츠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편은 본편대로 온전한 하나의 게임으로 완성해냈다. 얼리 액세스 이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온전히 추구하는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완성도와 재미 양측을 모두 챙긴 게임. 게이머들이 갈증을 느꼈던 부분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게임성이나 재미를 떠나 다른 부분에 더 집착하고 있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 요소들을 추구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를 놓쳐버린다면 결국 외면받는 것이 아닐까.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