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투 인터렉티브는 데달릭 엔터테인먼트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반지의 제왕:골룸' PC, PS4, PS5 한국어판을 지난 25일 정식 출시했다.
반지의 제왕:골룸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반지에 대한 집착으로 살아가는 존재이자, 활발하고 민첩하며 교활하고 속이 시커먼 존재 골룸이다. 그의 경우 반지의 제왕 세계관 등장인물 중에서 굉장히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등장인물이나 반지의 제왕의 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사악한 인격의 골룸과 소심하지만 비교적 사교적이고 신중한 성격의 스메아골이라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게임에서도 이런 부분을 대사나 시스템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시도가 보인다.
이번 리뷰는 PS5판 반지의 제왕:골룸 플레이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또, 게임이 톨킨 번역지침을 따르고 있어 리뷰 내 명칭도 이를 따라 작성했다.
■ 골룸이…주인공?
게임의 제목처럼 반지의 제왕:골룸은 반지의 제왕 본편에서 중요한 악역으로 등장한 골룸을 주인공으로 삼은 반지의 제왕 IP 게임이다. 게임의 시점은 반지의 제왕 이전의 시간대인 호빗으로부터 긴 시간이 흘러, 반지의 제왕에서 본격적으로 골룸이 등장하기 전 어떤 행적을 걸어왔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호빗보다는 수십 년이 흘렀고,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하는 시점보다는 조금 앞이다. 어둠숲의 요정들에게 붙잡혀 갇혀있는 골룸을 찾아온 간달프와의 대화에서 60년도 더 전에 빌보가 반지를 훔쳐갔다는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사실상 게임에서 전개되는 스토리 파트는 이 어둠숲의 감옥에서 간달프가 골룸을 추궁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평소대로 거대한 여왕 거미 쉴로브의 둥지가 있는 모르도르 키리스 웅골 인근 산맥에서 활동하던 골룸이 어쩌다 반지의 악령인 나즈굴들에게 쫓겨 바랏두르의 수용소에 들어가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반지의 제왕:골룸의 튜토리얼 파트이기도 하다. 여기서 자신보다 확실하게 강한 오르크나 나즈굴들을 피하다가 결국 점점 포위망이 좁혀지면서 붙잡히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골룸이라는 등장인물의 특성상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쉴새없이 혼잣말을 하는 편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골룸이 악한 인성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면 상대적으로 선한 편린이 남아있고 소심한 스메아골의 인격이 주저하면서 의견이나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는 단순히 사운드를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스토리 진행 도중 종종 발생하는 시스템을 통해서도 두드러지는데, 특정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각 선택지는 두 개의 인격이 가진 성향에 맞는 결정이 배분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이 선택한 선택지와 반대되는 선택지의 인격을 설득해야 하는 파트가 준비되어 있다.
■ 처음부터 끝까지 큰 변화 없는 진행
인트로의 키리스 웅골 파트가 튜토리얼도 겸하고 있다 이야기했는데, 플레이어는 반지의 제왕:골룸을 플레이하며 여기서 배운 것들만을 가지고 큰 변화없이 엔딩까지 진행하게 된다. 골룸은 잠깐동안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기어서 낮은 공간이나 굴에 들어갈 수 있으며 특정한 벽을 기어오르고 심지어 벽을 달려서 짧은 거리를 넘어가는 것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투구가 없는 오르크는 후방에서 들키지 않게 접근해 목을 졸라 무력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며 돌을 던져 유인하고 조용히 지나가거나 조명을 가리는 방식의 플레이도 구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상 끝이다. 계속해서 이런 기능들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데 물론 다른 게임들도 처음에 배운 기술들이 대부분 게임 후반부까지 쭉 핵심 기술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긴장감도 주고 같은 기술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게 하는 등 변주를 주는 편이지만 반지의 제왕:골룸은 초반에 봤던 지형을 이동하는 방식이나 퍼즐을 푸는 방식, 몸을 숨기고 지나가는 방식 등이 후반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별다른 변화 없이 후반부까지 계속 기초적인 은신/잠입형 플레이와 퍼즐만 줄창 풀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은신도 상당히 몰입을 깨는 편이다. 영화에서도 골룸이 어둠에 몸을 숨기는 장면들이 나타나기는 했고 게임에서도 이를 활용해 골룸이 음지에 숨어다니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그저 그림자 안에만 있으면 정말 손만 살짝 뻗어도 닿을 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들이 골룸을 알아채지 못한다. 반대로 그 상태에서 살짝 움직이다 발소리를 내면 오르크가 인식해서 살짝 움직이고 바로 골룸을 포획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며 적에게 붙잡히거나 사망하면 이전 포인트로 돌아가서 재시작하게 되는데 그게 안전한 시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적의 근처에 저장되는 경우도 있어 바로 도망치지 않으면 다시 게임오버가 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아니, 그리고 선택지를 바꿀 때마다 X 버튼이 표기된 상태로 지워지지 않아 잘 살펴보고 선택해야 한다.
이것보다 좀 더 가까운 곳이라도 그림자 안에 있다면 걸리지 않는다.
■ 슬기로운 감빵생활:바랏두르 편
솔직히 말해서, 출시 전에 공개된 영상들을 볼 때도 게임의 모델링이 그렇게 준수한 편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을 가졌다.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톨킨의 작품 세계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이른바 팬보이와 같은 수준으로 선호하는 IP이기 때문이다. 정식 출시에선 뭔가 보여주겠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도 알고 있듯, 반지의 제왕:골룸은 그런 기대감을 다소 저버리는 타이틀이었고 개발사는 사과문을 게시했다.
비단 주인공이 비호감인 골룸이라서?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야 다른 등장인물을 주역으로 삼고,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을 떠올릴만한 팬들을 위한 요소들을 꾹꾹 채워주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골룸으로도 지금보다는 나름대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스토리와 1회차 플레이를 할만한 은신/잠입형 게임을 만들 수는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간달프의 등장이나 호빗에서의 반지 탈취 사건, 그리고 영화에서도 나왔던 골룸이 배긴스라는 성을 고문 끝에 내뱉는 장면, 제작 중인 공성병기 그론드, 사우론의 입 등 원작을 알고 있다면 반가울만한 등장과 언급은 있었다.
바랏두르 노역 시뮬레이터에선 감방 왕고 노릇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반지의 제왕:골룸은 매력적인 스토리라인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게임의 대부분이 바랏두르 감옥에서 노역을 하는 골룸의 이야기와 그 뒤에서 암약하는 사우론이나 그 수하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슬기로운 감빵생활:바랏두르 편인 것도 그렇지만 최종보스와의 일전마저 허무하게 끝이나고, 도중에 볼 수 있는 각종 등장인물의 모델링이나 모션들은 상당히 기대 이하의 품질을 보여줬다. 레이트레이싱까지 켠 품질 모드를 사용해도 그렇게 큰 프레임 저하나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부분에서 약간 의아함이 들었는데, 오르크에게 발각되어 붙잡혔을 때 골룸의 머리보다 약간 뒤쪽의 허공에 허술한 주먹질을 하는 장면을 봤을 때 납득하고 말았다.
골룸과 스메아골이라는 캐릭터성을 반영하려는 생각이 보이는 부분들이 확실히 있었고 혼잣말을 하거나 선택지의 성향이 서로 다른 점 등은 괜찮은 인상을 남겼지만 막상 이렇게 주어진 선택지를 고민해서 고를만한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기껏 골룸이나 스메아골의 성향에 맞는 선택지들이 주어졌건만 극적으로 변하는 스토리를 느끼기는 어려웠고, 심지어 잘 굴려보면 살릴 수 있었을만한 논쟁 시스템도 큰 긴장감이 없는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껏 이 과정을 거친 뒤에도 작중의 전개에 큰 물결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기에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데달릭 엔터테인먼트의 장기인 인디게임 감성의 포인트 앤 클릭 게임 같은 스타일을 취했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패치 등을 통해 손을 보겠다고는 했지만 대격변급으로 과감한 패치가 진행되지 않는 한 골룸의 부활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의 반지의 제왕 IP의 신작이라 기대한 것 치고는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줬다.
끝으로 나도 개인적으로 반지의 제왕:골룸에 대해 사우론처럼 한 마디 하고 싶다. (암흑어). 뭐라고 했는지는 암흑어를 할 줄 알면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