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개월 전, 정식 출시를 기점으로 전 세계 게이머들의 극찬을 받은 게임이 있다. 정식 한국어판이 출시되지 않아 영어 등의 외국어로 플레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국내 게이머들 역시 굉장한 호평을 보냈고, 굉장히 빠르게 유저 한글화가 진행되고 있기까지 하다.
지난 8월 4일 정식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3'은 RPG 분류 중에서도 TRPG와 상당히 가까운 감성으로 즐기는 CRPG 장르의 시리즈 신작이다. 첫 작품인 발더스 게이트가 무려 1998년 출시작이었으니 역사도 긴 편인데 라리안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발더스 게이트3은 약 19년 만에 정식으로 출시되는 넘버링 후속작이다. 물론 그간 스마트 플랫폼용 앱이나 인핸스드 에디션 등의 리마스터판 게임을 몇 년 간격으로 계속 출시해 시리즈의 명맥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후속작을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발더스 게이트3은 던전&드래곤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풍부한 스토리 및 파티 기반 CRPG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한 대화와 선택들을 통해 동료애나 배신, 생존과 희생, 막강한 힘의 유혹과 맞닥뜨리게 된다.
■ 나만의 아바타로 모험을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맞는 난이도를 먼저 선택하고 발더스 게이트3의 인트로 컷신을 본 뒤 게임을 진행할 캐릭터를 고를 수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게임 내 동료로 등장하는 오리진 캐릭터를 골라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나만의 오리진 캐릭터를 생성해 발더스 게이트3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뛰어드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TRPG 내지 CRPG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라면 오리진 캐릭터 커스터마이즈 부분에서부터 꽤 흥미로운 요소들을 직접 고를 수 있다는 부분에서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는 이 단계에서 자신의 오리진 캐릭터 외형 설정부터 시작해 종족이나 그 종족의 하위 종족, 종족 특성 관련 선택지가 있는 경우 이 선택지, 클래스, 오리진 캐릭터가 가진 배경, 그리고 능력치 세부 조정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종족의 경우도 각 종족별 종족 특성이나 능숙하고 서툰 부분들이 있어 게임 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마음 가는대로 만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자신이 구상한 설정에 충실하게 세팅을 해서 컨셉 플레이를 즐겨도 좋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정보를 수집한 최강의 조합을 맞춰서 오리진 캐릭터를 생성해도 좋다.
하위 종족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다양한 종족 선택지가 있는 셈이다. 인간, 엘프, 드워프, 하프 엘프, 하플링, 노움처럼 메이저한 판타지 세계 속 종족들도 있고 기스양키라는 독특한 종족도 선택지 중 하나로 제공된다. 클래스의 경우도 원 빌드로 육성하는 경우와 클래스를 섞어서 육성하는 패턴이 있는데 역시 플레이어의 육성 방향성에 따라서 다재다능하지만 전투에서 약할 수도, 동료들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구성일수도, 혹은 전투를 전담하되 다른 역할은 동료에게 양보하는 형태의 캐릭터를 육성할 수도 있다.
하이엘프 로그 레굴루스를 만들어 게임을 진행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능력을 얻어가는 재미도 있다.
처음 캐릭터를 생성할 때 수호자 외형도 고를 수 있다.
■ 흥미롭고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
발더스 게이트3을 구성하는 것은 수많은 이야기와 그 속의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이 벌이기도 하는 전투나 모략 등이다. 본 작품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와 여러 가지 탐험할 것들, 숨겨진 비밀들이 존재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양한 각도로 이야기를 조명하고 풀어나갈 수 있어 플레이어의 선택과 진행 방식에 따라 이야기의 구조가 휙휙 바뀐다. 내가 이렇게 플레이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플레이했을까?를 찾아보면 아니 이런 장소가? 혹은 아니, 이런 방식으로도 클리어할 수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장면들을 꼭 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큰 틀을 가진 스토리를 제시해주지만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플레이어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시기에 게임을 마무리하게 되기도 한다. 플레이어의 오리진 캐릭터나 다른 오리진 동료들의 경우 마인드 플레이어라는 존재들에게 납치당한 뒤 그들의 함선에서 안구를 통해 두개골 안에 기생하다 지시에 따라 마인드 플레이어로 변이하게 되는 올챙이를 강제로 이식당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힘을 합치거나 각자 행동하기로 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크게 1막부터 3막까지의 구분이 존재하며 1막에서만 해도 여러 인물을 만나면서 그에 따라 올챙이 제거 방안을 저널에 입력하게 되며 이들을 찾아가거나 찾아가지 않거나, 혹은 죽이거나 하는 식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게 된다. 아예 특정 정보를 플레이어가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리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메인스토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서브 퀘스트격의 새로운 이야기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아니, 플레이어의 진로에 따라 상당히 적극적으로 해당 지역이나 인물과 관련된 서브 스토리가 계속해서 던져지며 새로운 구역을 탐험하다 보니 또 새로운 사건이나 새로운 구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해 계속해서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더라도 막을 넘어가거나 해당 이벤트의 중요 인물이 사망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어떠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단 막을 넘어가버리면 동료 트리거 등이 해제되는 경우도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어떤 성향으로 플레이하느냐,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오리진 동료와의 로맨스나 플레이 성향에 따라 함께하거나 떠나는 동료도 있어 이런 것들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움의 한 부분이다.
■ 창의적인 턴 기반 전투
올드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울티마처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임은 무엇일까? 라는 화두가 드물게 던져지곤 했다. 이 답안 중 하나로 발더스 게이트3이 거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자 그대로 마냥 넓은 땅에 플레이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곳곳에 먹을거리를 숨겨두고 자발적으로 이걸 찾거나 때로는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좋았다. 앞서 이야기 구성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발더스 게이트3의 장점인 다양한 시각의 접근은 전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평소에는 실시간으로 게임을 진행하지만 전투에 돌입하면 우선도 굴림에 따라 행동 순서가 결정되고 턴 기반의 시스템이 적용된다. 단 발각되지 않은 동료의 경우 전투에 걸리지 않은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또, 정면에서 돌입해 정공법으로 싸운다거나 다리 지지대를 공격해 무너뜨리기, 조용히 뒤에서 접근해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기, 함정을 작동시켜 말려들게 만들기, 기름을 던져놓고 불 붙이기 등 여러 상상을 실현한 전투를 즐길 수가 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같은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헤쳐나가는 모습들이 제보되곤 한다. 이런 방법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의 즐거움을 하나씩 까발리는 느낌이라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예시를 들어보자면 한 해외 미디어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스킬과 지형을 활용해서 초고도에 위치한 아울베어 몸집을 키운 뒤 도약 공격을 가해서 압도적인 질량 공격으로 절명시킨다거나, 최근 게시된 해외 스트리머의 전문가 난이도 솔로 플레이에서 강력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바닥에 회복약을 뿌려두고 함정으로 동귀어진한 뒤 떨어진 포션으로 회복해 승리하는 전략처럼 상상을 구현하는 즐거움이 있는 게임이다.
■ 영양가 높고 자유로우며 풍부한
발더스 게이트3은 제공되는 이야기의 풍부함이 상당하다. 구석구석 이것저것 다 핥아먹으며 게임을 진행하는 성향의 게이머라면 1막에서만 수십 시간을 녹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무의미한 시간 늘리기가 아니라 흥미로운 플레이타임으로 가득하다는 점이 대단한 부분이다. 당장 종족별 특유의 선택지나 직업 및 배경 관련 선택지들에, 어떤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들의 반응, 이런 부분들을 바탕으로 해서 길가에 널부러진 시체 안에서 찾은 편지를 통한 해당 캐릭터의 사연 등 세계가 흥미로운 정보들로 가득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다양한 비밀들이 숨어있어 하나하나 파헤치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매우 큰 강점이라고도 언급했는데 말솜씨와 각종 보정치 등을 통해 주사위 굴림으로 해결하는 것 외에도 조작하는 캐릭터를 바꿔 대화를 거는 것으로 시선을 끈 뒤 다른 캐릭터로 활동한다거나 하는 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발더스 게이트3은 이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수백 시간짜리 장난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존재하는 오리진 동료의 캐릭터성과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멀티플레이로 하면 아예 살아있는 동료와 플레이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조금 아쉬운 부분도 이야기하자면 먼저 오리진 캐릭터의 외형 커스터마이즈 폭은 주어진 기능 안에서는 나름대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폭이 너무 좁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또, 특정 오리진 동료와의 로맨스 관련 버그가 존재하기도 하고 악 성향 플레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더불어 3막까지 점점 거대하고 웅장해지면서도 여전히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굉장한 강점이지만 일부 후일담의 경우 뒤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좀 허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한편 사양 면에서는 그래픽 카드가 아직 GTX 1060 현역 시절이었던 시기의 컴퓨터를 사용해서도 그럭저럭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오래 플레이하면 버벅임이 늘어서 사양 타협을 하거나 좀 더 높은 사양의 기기를 사용하는 편이 보다 높은 몰입감을 제공할 것.
CRPG나 RPG, 턴 기반 시스템에 몸서리를 치는 수준이 아닌 이상 발더스 게이트3을 아직 해보지 않았다면 꼭 플레이해보기를 바란다. 정말 자주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데, 개인적으로는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과 더불어 올해 손에 꼽을 명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크기 때문에 못 들어오겠지라는 예상이 틀렸을 때조차 즐겁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